책/독서노트

삼월은 붉은 구렁을 - 온다 리쿠

smfet 2007. 3. 26. 23:11
* 권영주 옮김, 북폴리오 펴냄
* 삼월 연작 첫번째

"꿈꾸는 책들의 도시"를 읽으면서, 우와,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하겠는걸! 하는 생각을 했다.
책으로 가득찬 도시, 작가로 가득찬 도시, 환상의 책이 가득 있는 지하세계, 그리고 부흐링.
어렸을 적 꿈꾸던 서재의 확장판같은 기분도 드는 그런 동경.

"삼월은 붉은 구렁을"에서는
"나도 독자야. 나도 니네 맘 알거든?" 하고 끊임없이 속삭인다. 이런 맘이지? 이런 기분이 든 적 있지? 라고.
작가에게 독자로서의 공감을 느끼다니. 어떻게 보면 아이러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중 인물이나 작가의 감성이 아니라 독자로서의 동지애를 느끼게 되는 게 신기하다.

"누구누구 글/그림"의 의미라든가, 잘 쓴 이야기의 쾌감을 느끼는 순간, 작가의 성별을 궁금해하는 기분 등등,
나도 그랬어, 라든지 맞아! 라고, 이 글의 작가는 작가이기 이전에 나랑 같은 독자구나~! 하고 외치게 된다. 아아 동지여.

액자소설이면서, 같은 그림인데도 각 장마다 다른 프레임을 씌워서 보여주고 있다. 프랙탈 구조를 보는 것처럼, 끊임없이 유사한 패턴이 나타나지만 동일하지는 않은.
처음 두 장을 읽을 때까지는 작가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하고 같은 그림과 같은 프레임이라고 생각했다가, 3장을 읽으면서 프레임이 바뀌어서 당황했었는데 첫장과 두번째 장의 프레임도 다른 거였더라. 단지, 이 경우엔 같은 프레임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도 조금은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공감을 느끼는 만큼 느끼기만 하는게 아니라 대화하는 기분이 들어서, 책을 읽으면서 이리저리 머리굴려보게 된다. 그것도 기쁜 맘으로.
온다 리쿠는 역시, 이쁜 애들만 나오는 학원물은 나하고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작가가 된 듯 하다. 온다 리쿠 컬렉션을 몽땅 사댄 게 억울하지 않군. ^^

덧붙임: "밥하고 어울리는 건 술하고도 어울리는 법이지" 라는 지나가는 대사가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