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독서노트

황혼녘 백합의 뼈 - 온다 리쿠

smfet 2007. 6. 3. 10:23
* 권남희 옮김, 북폴리오 펴냄

삼월 연작으로 출간되었던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의 주인공, 리세의 고등학생 시절 이야기.

아니 잠깐, 리세가 주인공인가? 사건의 중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찰자적인 느낌이기도 한데. 전작의 기억이 완전하지 않은 리세는 본연의 모습이 아니어서 그랬으려니 해도, 이번엔 완전히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행동하는 리세인데도. 리세의 독백도, 생각도 모두 말해주지만 그래도 리세에게 감정이입이 되지는 않는다.

온다 리쿠의 문장은 짧고 간결한데도, 단어나 수식어가 너무나 소녀적이고 화려한 면이 있다. 특히나 책의 제목들을 보면 낯간지러울 정도. 황혼+백합에다가 "백합의 뼈"라니.

패러랠 월드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던 온다 리쿠의 이미지가 강해서인지, 같은 세계인데도 이 리세가 그 리세가 맞나? 하고 의심하면서 읽기는 했지만, 겹치는 부분이 많지는 않아서 (연작임을 감안하면 의외다 싶을 정도로 적다. 그 덕분에) 따로 떼어 읽어도 그닥 어려움 없이 하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여도 될 정도이다.

온다 리쿠는 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나가는 일본 작가 중의 한명이라고 하던데. 아우르는 장르가 참으로 넓기도 하다. 항상 담담한 끝맺음과 마찬가지로, 클라이맥스나 반전에 이르러서도 긴장감이 고조된다기 보다는 그냥 담담하게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걸 구경하는 느낌. 심지어 죽어나가는 순간에도 그러니까 뭐.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톤을 유지하는 어조.

그리하여 미스터리의 탈을 쓰고 있는 부분이 상당부분 있기는 하나, 트릭을 푸는 건 거의 불가능하고 (힌트도 주지 않으니까) 그냥 흘러가는 걸 보는 느낌이라 미스터리를 읽는 느낌은 들지 않고 말이지.

이런저런 마음에 안드는 구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월하게 읽히는 것만은 틀림없는 책. 그리고 판타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의 특성 탓인지, 항상 어딘가 판타지스러운 이야기.

* 하교길에 좋아하는 소녀를 기다리는 소년이 등장하는 장면은 "여섯번째 사요코" 에서 마주친 장면 같은데~

* 예쁜 소녀의 "자각하지 못하는 악"이라. 온다 리쿠의 여자애들은 너무나 완벽해서, 리쿠걸로 선택받지 못한 완벽하지 못한 아이들에 대해서는 같은 수준(?)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하다. 그래서 어째 붕 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해. 내 주위나 내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캐릭터가 될 수 도 있을 것 같은데, 시선이... 달라서 위화감을 준다.

*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등장하는 인물이 같은 인물 같은데, 그렇다면 앞으로도 리세의 이야기가 계속 나올 거라는 거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