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독서노트

ZOO - 오츠 이치

smfet 2007. 9. 19. 20:33
* 김수현 옮김, 황매 펴냄
* 수록작 : SEVEN ROOMS, SO-far, ZOO, 양지의 시, 신의 말, 카자리와 요코, Closet, 혈액을 찾아라, 차가운 숲의 하얀 집, 떨어지는 비행기 안에서

처음 오츠 이치를 만났을 때 생각했다. "이런 소녀스러운!"
나와 동갑인 공대 출신 청년이 이런 소녀적 감성을 짚어내다니.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최근에 데뷔작과 단편집이 출간되었다길래 이전 작과 비슷한 느낌을 기대하며 주문했다. 그러나 주문하고 나서 서평을 찾아봤더니 호러라고...-_-; 한여름에도 호러는 무서운데, 서늘해지는 계절에는 어떠할까. 안 그래도 요즘 몸이 허한데 말야. 그래서 한쪽으로 미뤄뒀다가, 사람 많은 통근시간에 해치우자! 하는 기분에 집어들었다.

평이 너무나 좋았길래 조금은 기대를 했지만...
기대 이상의 작품이었다.
그 질릴 정도의 소녀적인 감상에, 좋긴 하지만 계속 끌어안고 지내진 않을 것 같아서 분양해 버렸는데, 그 쓸쓸함의 주파수와 너밖에 들리지 않아가 그리워졌다. ZOO가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이 작가도 모아야 해! 싶어서. -_-;; (이미 모으고 있는 작가만으로도 벅찬데-_-; )

표제작인 ZOO보다, 첫 장의 "SEVEN ROOMS"가 더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살인범과 살인장면에 대한 그 무덤덤한 표현이, 꼭 책상 위의 연필을 묘사하는 것처럼 무생물을 취급하는 듯한 감정 없는 말투라서... 화자가 10살 꼬마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스티븐 킹처럼 끈적끈적한 공포감을 주는 호러는 아니지만 건조하고 서늘한 공포가 등줄기를 훑어간다. 아마도 내가 피해자 그룹에 속해있는 사람이라고 느껴서 더 그럴 테지만...

그 외 몇 작품에 대한 간단한 메모만 추가로.

카자리와 요코는 호러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어투나 사고가 묘하게 소녀적. (아, 그러니까 내가 소녀적이라는 걸 이해하는 감성이 있다면 말이지 ^^; )

Closet은 서술트릭. 3인칭과 1인칭 서술을 착각할 줄이야 -_-;

차가운 숲의 하얀 집은 잔혹동화 스타일의 민담을 읽는 기분.

* 쓸쓸함의 주파수에서의 "잃어버린 이야기", 그리고 이 책의 "SEVEN ROOMS". 영상 시나리오 작가도 겸하고 있는 오츠 이치이고, 대부분의이야기가 영상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이 이야기들만은 글이 아니면 표현해 낼 수 없는-영상으로는 표현이 불가능할 듯 싶은- 이야기이다. 문자로 구현될 때만 존재할 수 있는...

* 수록작 중 "신의 말" vs "붉게 피는 소리"
능력이 있는 자의 마음가짐(혹은 신념)은 얼마나 중요한가...
붉게 피는 소리에서는 정말로 꽃처럼 아름다웠던 목소리가, 신의 말에서는 흉기가 되어 돌아온다.

* 데뷔작인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도 함께 읽었는데, 사체(정확히는 사체의 영혼)가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끌어간다. (이거, 강간당해 죽은 아이가 화자로 나오는 영미쪽 소설도 있었는데 기억이 안나네...소개만 보고 책은 안 읽은 거라) 17세 때라니, 역자후기에도 나오지만, 정말로 천재 작가라는 말을 들을 만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