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추억
교토, 2010 - 게스트하우스 와라쿠안
smfet
2010. 10. 5. 11:14
"버스정류장에서 2분거리"의 약도를 설마 헤맬 일이 있겠느냐 싶었는데,
네모 반듯한 격자의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어두컴컴한 길에서 어느쪽이 북쪽인지, 지도는 어느쪽이 북쪽인지 알수 없어서 골목길을 한참 걸어가다가 되돌아왔다. 처음 5분 가량은 "어디로 가든 되겠지 뭐~"하며 친구랑 즐겁게 떠들며 걷기 시작했으나...
짐가방을 들고, 어두운 이국의 거리를 (상점이든 관광지든 일찍 문을 닫는 교토의 밤거리. 우리나라 밤거리가 그리도 휘황찬란하니 밝았을 줄이야! 불 켜진 상점들도 어둑어둑하다) 5분정도 걸으니 점점 무서워졌다. 무엇보다, 길거리에 사람이 없어!! 8시도 안된 시각인데 텅빈 거리!
결국 지도를 보는 걸 포기하고 불켜진 로손 편의점에 가서 점원에게 질문.
도착한 첫날이라 일본어가 익숙하지 않아서 좀 더듬거렸지만, 지도 보여주면서 물어봤더니 우리가 짐작했던 방향이랑은 정 반대쪽이었다. -_-
(나중에 깨달았지만, 교토는 일본인들도 절반 이상은 현지인이 아닌 관광객이라서 -_-;;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봤자 별 효용은 없다. 그저 가게에 들어가서 물어봐야 ;; )
드디어 지도는 꼭 골목길처럼 그려놨지만 의외로 큰길가에 위치한 (다만 대문은 쏙 들어가 있어서 주의깊게 봐도 놓치기 쉬운-_-) 와라쿠안 찾기 성공! 스탭이 우릴 맞아서 가파른 나무계단을 올라 2층의 트윈 룸으로 안내해주었다.
국내에서 모텔(출장으로 간 거임-_-)에서 묵을 때나, 호텔에서 묵을 때나(이건 친구랑 놀러간 때여서 짐이 별로 없어서 그랬나-_-) 짐을 방까지 날라다 주는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여기는 게스트하우스임에도 불구하고 방 안내하면서 무거운 짐가방을 들어줘서 조금 당황.
옛 마치야(상가 건물)를 수리해서 만든 게스트하우스라, 현관에서 신을 벗고 맨발로 낡고 가파른 나무계단을 올라간다.
(비좁아 보이는 이 공간이 2층에서 보이는 계단 위쪽. 한번 꺾여서 내려가는 계단 위에는 분위기 있는 조명등이 놓여 있다.)
안내받은 방은 그리도 궁금해하던 다다미방!
창은 유리로 바꿨지만, 여름이라 방충망이 있는 쪽은 열어두고, 분위기 있게 대나무 블라인드를 쳐 뒀다. 맞은편은 주인부부가 사는 2층인데, 중앙 뜰의 나무가 2층까지 무성해서 창을 활짝 열어둬도 맞은편에서 보이지 않는다.
방이 없어서 같은 방에 5일 연속 머무를 수 없어, 3곳을 돌아가며 묵었는데 그 중 가장 맘에 들었던 2층, 다다미 8장짜리 트윈 룸!
(이번 교토여행을 통해서 "다다미 몇장짜리"방이 정확히 어떤 크기인지 확실히 알게 된게 나름 수확 ^^ 다다미의 배치와, 주변 장식-도코노마 및 가구배치-에 따라 같은 사이즈의 방도 크기가 주는 실제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구레타케안의 방이 다다미 6조 반 짜리인데, 와라쿠안의 8조짜리 방 같은 넓이의 느낌을 주더라; )
TV와 에어컨은 없고, 작은 선풍기 하나. 그리고 교토에 부는 에코 열풍을 따라 분리수거 가능한 나무 쓰레기통.
기모노를 걸어두면 어울릴법한 옷걸이와 (걸려있는 건 현대식 나무 옷걸이지만 ^^)
(오른쪽의) 미닫이문과 똑같은 디자인의 문이 달린 벽장엔 이불과 베개가 들어있다.
이불과 베개는 공용이지만, 새 투숙객에게 제공되는 빳빳한 시트가 이불/요/베개용 전부 준비되어 있어서 전혀 거북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
안내문과 근처지도가 놓여있는 작은 탁자와 방석.
형광등도 아니고 백열등인가? ;; 느리게 켜지고 그닥 밝지는 않은 불빛이어서 처음엔 무지 어색했는데 며칠 지나다 보니 적응이 되더라는. ^^
교토역 이세탄 베이커리에서 사온 스위츠들을 늘어놓고 먹기 시작.
일본 과자, 한입 먹기엔 맛있긴 한데...
달다!달다!달다! OTL
방마다 냉장고는 없고, 공용 냉장고만 있기 때문에 물을 넣어두러 외출했다가 생수와 함께 라무네, 맥주, 타코야키를 사왔다. >.<
(타코야키는 나중에 니시키시장에서 유명하다는 키리키리하카세보다 이동네 헤이안진구 옆에서 파는게 훨씬 맛있었다;; )
첫날 가방 대충 풀어헤친 지저분한 풍경이 뒤에 그대로 나왔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바로 아래쪽에 있는 노트북 컴퓨터.
각국의 자판이 이미 설정되어 있다. (일본인이 절반 이상 묵는 듯 하지만; )
컴퓨터 따위 없이 살거야!라고 했으나... 교토의 미친듯한 날씨 때문에 매일 일기예보를 확인했던 곳. -_-;
오른쪽 구석의 냉장고에는 "교토의 여름은 덥습니다! 아이스 베개 무료 제공!"이라는 문구와 함께 냉동실에 아이스팩이 들어 있었다. -_-;;
한낮에는 35~38도, 밤에도 26도 이상을 유지하던 교토의 9월(-_-)
난 저녁엔 선풍기 바람도 추웠지만(나란 뇨자 이런 뇨자 -_-) 친구는 선풍기와 얼음베개를 껴안고도 더워서 잠을 잘 못 이루곤 했다.
소문에 의하면 여름에 더운 만큼 겨울엔 춥다고 한다. (일본식 가옥이 겨울 난방도 엄청 안된다고 -_-;;;;)
하지만 굴하지 않고 잘 자고
다음날은 해뜨는 새벽에 일어나는, 나는야 어쩔 수 없는 아침형 인간. -_-;
함께 여행간 친구가 일어날 때까지 두어시간을 혼자 인터넷하다가 책읽다가 일정 체크하다가 이렇게 일없이 밝아오는 창밖이나 사진찍다가 하며 시간을 보냈다. 숙소에서도 가장 먼저 일어난 편이라 화장실/샤워실 쓰기는 편했다능; 하지만 나도 늦잠자고 싶다능 ㅠ.ㅠ 혼자 일어나면 쓸쓸하다능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