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3. 5. 21:47

가장 무서운 건, 추상적인 공포가 아니라 일상이 공포로 느껴질 때다.
그래서 공동묘지의 처녀귀신보다, 엘리베이터나 화장실에서 등장하는 귀신이 더 무서운 거고.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퇴근길에 지하철을 탔다.
회사 위치가 꽤 변두리에 있어서, 퇴근시간에 시내 중심방향으로 향하는 전철에는 빈 자리가 꽤 많아서 앉았는데, 다음 정거장에서 어떤 아저씨가 내 옆자리에 와 앉는다.

술냄새가 희미하게 풍겨서 움찔했지만 일단 가만히 책을 읽고 있었는데,
빈 옆자리하고 이상한 대화를 나눈다. 게다가 험한 단어를 사용한다. 이 사람 취했나봐. 무서워져서 건너편의 빈 자리로 옮겼다. 계속 책을 읽고 있었는데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던 아저씨, 뭐라 중얼거리더니 내 옆자리로 옮겨온다.

정말 섬뜩했다.
다른 칸으로 옮기려고 일어났더니 아저씨가 중얼거린다. "도망가?"

강간이나 폭행에 대한 공포는 이런 짧은 순간에서도 생겨난다.
환한 지하철에, 서 있는 사람은 없었지만 앉을 자리는 꽉 찬 정도의 지하철에서,
마흔은 넘어 보이고 술에 취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갈아타기 위해서 그 지하철을 내릴 때까지도, (사실은 내리고 나서도 그 아저씨가 뒤따라 내리지는 않는지 몇번이나 뒤를 돌아보고서야) 저 아저씨가 쫓아오면 어떻게 하지. 소리를 지르면 사람들이 돌아봐 줄까? 도와 줄까?

대체 내가 왜 그 아저씨한테 찍혔는지도 모르겠다. 왜?

일상이 순간적으로 공포가 되는 순간. 가능하면 경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섭다.
Posted by smf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