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8. 25. 23:57

* 정영목 옮김, 해냄 펴냄
* 작가인 주제 사라마구는 1998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  
   http://nobelprize.org/nobel_prizes/literature/laureates/1998/index.html
* 이 책은 포르투갈에서 1995년 출판되었다.

제목은 진즉부터 들어왔지만,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후속작 "눈뜬 자들의 도시"가 출간되면서 홍보용으로 끼워주는 비매품 책자로. (사실은 동생이 카트에 넣어뒀던 걸 주문했는데, 홀랑 들고 가 버려서 y양에게 부탁해서 다시 받았다. -_-; )

제목 그대로 "눈먼 자들의 도시"이다.
전체 500여 페이지 중, 300페이지 정도까지는 눈먼 자들의 도시가 아니라 눈먼 자들의 병동이긴 하지만. --;
눈먼 자들의 병동을 묘사한 전반부는 간수/재소자로 역할을 나누어 인간성을 탐구했다는 심리 실험, 혹은 과도기 정부의 군부독재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물음표, 느낌표 등의 감정기호는 물론 따옴표까지도 사용하지 않으며, 단락구분을 위한 들여쓰기도 최소한만을 허용하는 (8페이지가 넘도록 한단락이 계속되기도 한다.) 탓에 집중이 필요하다. 평소 한 단락씩 읽는(보는) 습관이 들어 있지만 8페이지를 동시에 보는 건 물론 불가능하므로, 읽고 있는 줄을 놓치지 않으려고 계속 집중해야 한다.

쉼표와 마침표만을 사용한 글자에서는 고함도, 오열도, 환호도 시각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데도 얼마나 비참하고 서글프고 끔찍한지.

애시당초 성선설 따위 믿지 않지만, 그래도 너무나 비참한 눈먼 자들의 도시였다.

의사의 아내가 있는 병실의 여자들이 지배자들의 병실로 갈 때부터, 병실에 불을 지른 여자의 행동을 따라가는 동안 너무나 긴장했다. 숨쉬기도 힘들 정도로.

작품내에서는 백색질병의 원인이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지만 (지금 눈이 멀었다가 중요한거지 왜가 중요한 게 아니기는 하다) 전염의 매개는 두려움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의사의 아내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고, 눈이 멀 날을 기다리고 있었지 그날을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았으니까.

* 의사의 아내가 너무 훌륭해서, 그녀의 희생에 기대는 사람들이, 그리고 그걸 다 감내하고 희생하는 그녀가 미워질 정도였다. ...하지만 의사의 아내가 다른 사람들과 똑같았다면 이 책은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비참한 상황의 신문기사 정도였겠지.

* "내 이름이 무슨 소용이 있소. 여기선 내 목소리가 곧 나요" 라는 대사가 몇 번 나온다. 그 말처럼, 책 전체를 통틀어서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의사의 아내, 색안경을 낀 여자, 첫번째로 눈이 먼 남자, 안대를 한 남자, 원래부터 눈이 안보였던 남자... 등등으로 구분할 뿐이다.

* 백색질병에서 해방된 이후의 이들이 궁금했다. 그런데 "눈뜬 자들의..."의 시놉을 보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슬쩍 덮어버리고 같은 정치인들이 같은 권력을 잡는 모양이다. 그래, 세상이 그런거지, 하지만 책에서라도... 라고 한숨을 잠깐 쉬었다.

* 의사의 아내는 백색질병에서 해방된 세상에서 과연 행복했을까.
Posted by smf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