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0. 28. 08:40
* 박정임 옮김, 사람과 책 펴냄
* 마스터피스 시리즈 001

사람과 책의 마스터피스 시리즈. (예정) 라인업을 보니 SF 쪽을 중심으로 기획한 듯 하다. 젤라즈니의 앰버 연대기가 포함되어 있네.

그러나,
무슨 생각으로 첫 작품을 이걸로 고른 거지?
온다 리쿠 열풍에 동참하기 위하여?

* 한줄 감상 : 일본의, 일본인의 (쇼와시대) 향수를 위한 책, 그 시절 일본에 대한 오마주.

너무나 일본스러운 감성에 잠시 말문이 막힌다. 내가 느끼는 온다 리쿠의 노스탤지어는 "경험해 보지 않은 일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 이었지만, [로미오...]에서는 그 경험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그리움의 나열이다. 그리움을 불러 일으키는 게 아니라, 서브컬쳐(정확한 의미는 책을 덮고 난 지금도 확실히 실감나지 않지만)를 경험한 쇼와시대(1929~1989)의 각종 아이템들을 끊임없이 나열한다.

그래서 그 시절의 일본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노스탤지어를 주지 못한다. 기본 줄거리는 단순, 그 수많은 말장난의 의미들을 이해할 수 없으면 의미가 없는 책이 아닐까.
책의 뒤쪽에는 무려 25페이지에 달하는 "20세기 서브컬쳐 용어 대사전"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걸 주석없이 읽어낼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무진장 재미있는 책이 될 수도 있을 듯 하다.

그러나 번역자도 거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게 문제. OTL 문체 자체는 매끄럽게 번역되었으나, 작품내 각종 소재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덕분에 낄낄대고 웃을 수 있는 책이 일견 지나치게 심각하게 포장된 듯한 기분도 든다.

다른 건 몰라도 적어도 만화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지식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스스로이지만... 그것만으로는 한참 부족. 특촬물-특히 괴수물-은 물론, 각종 시대의 유행 영화와 유행어, 유행가, 만화, 격투기 등 스포츠...등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라기보다는 경험의 향유-가 밑받침되어야 하더라.
게다가 하기오 모토를 하기오 마토라고 번역해 놓는 번역자는 대체 -_-;;
아니 닥터 스쿠르를 동물의 의사선생님도 아닌 "수의사 선생님"이라고 할 때도 참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씁쓸한 감정이...-_-;;;
이 정도 글이면 쇼와시대 일본문화 오타쿠한테 번역을 맡기던가~!!
그랬으면 적어도 두배는 재밌었을 텐데 아쉽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치자면, "초코파이 정"이라고 하면 모두가 별 설명 없어도 이해하는, 그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놓고 쓴 글인 셈이지 않을까.

띠지 광고에는 "20세기 서브컬처에 대한 오마주, 잔혹한 노스탤지어에 대한 향연"이라고 되어있지만, "일본의"라는 수식어가 더 따라붙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탈주"라는 소재 자체가 긴박감 있고 끊임없이 클라이맥스가 다가오기 때문에 글 자체는 수월하게 잘 읽히지만, 애정은 그다지 생기지 않는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그리고 알지도 못할) 향수가 생길 리가 없잖아.

* 사람과 책의 이 기획 시리즈, 마음에 들지 않는다. 비싸고 좋은 종이를 내지로 쓰는 바람에, 간만에 느껴지는 손끝의 매끌매끌함에도 깜짝 놀랐고, 덕분에 잔뜩 무거워진 책에도 조금 불만.
들고 다니다가 팔에 근육통이 생긴 듯 하다. -_-;




Posted by smf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