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1. 4. 13:25
* 권일영 옮김, 북스피어 펴냄
* 미야베월드 제 2막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 시대 배경 소설.
북스피어의 서평응모단 당첨되어 쓴 글. 의무감을 가지고 글을 쓰는 경우가 거의 없다 보니 어떻게 쓰는게 좋을지 모르겠다. -.-

일단 블로그에. 이 글은 예스에 올라감-.-

에도막부라는, 익숙하지 않은 시대의 소설이지만 오직 미야베 미유키라는 작가 이름만 믿고 기대했던 책이다. 초반부 200여페이지는 에도에 익숙해지기 위해 조금 당혹했지만, 글의 "끓는점"을 넘기면서는 너무나 몰입해서 읽고 말았다.

작가의 전작들을 좋아했고, 그래서 기대치가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실망시키지 않는 이야기라서, 읽고 나서도 참 좋았다.

원하지 않는 아이로 태어나, 바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지고 살아온 아이 호가 주위에 떠밀려 마루미번에 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낯선 에도 시대에 당황하며 읽기 시작했지만, 호가 익숙해지고 일이 손에 익으면서 독자도 함께 그 시대의 생활에 익숙해지게 된다.

위정자들의 대의를 위하여 숨겨지고 왜곡되고 부풀려지는 진실들, 그리고 거기에 휘둘리는 백성들을 보면 분하고 억울한 마음이 들지만 그것이 사는 방식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번을 지킨다"는 커다란 목적 앞에서는 누이동생이나 친우의 죽음도 진상을 덮어둬야 하는 것이다. 분한 마음을 가지면서도 위정자 집단을 단순히 미워만 할 수는 없는 것든, 백성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들도 그 희생자들의 목록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낯선 마루미에 몸을 의탁하는 호도, 유배지에 연금되는 가가님도, 바닷가 어부 마을을 떠나 히키테 견습을 하는 우사도, 모두 마루미의 외부인인 셈이지만 따뜻하게 맞아주는 마루미 내부의 사람들이 있다. 호와 가가님, 호와 우사의 인연도 소중하고 소중하며, 번 내부에서 맞아주는 사람들인 이노우에 가 사람들, 에이신 스님, 와타베, 그리고 이시노님들과의 인연도 아름답고 따뜻하다.

수많은 등장인물 모두가 살아 움직인다. 꼬맹이 호부터 "무시무시한" 가가님, 이름만 등장하는 측은공부터 염색집 뒤칸에서 앓고 있는 어린애 하치타로까지 모두 친근하다. 심지어 나쁜 짓을 한 인물들에게도,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손을 꼭 잡아주고 싶다.

정의의 응징이 있는 속시원한 해결은 아니지만, 따뜻하게 감싸안는 마무리를 보면서 마음에 온기가 퍼지는 걸 느낀다. 권선징악/해피엔딩이라고는 할 수 없는 해결에 박수는 쳐주지 못하겠지만 응원은 하늘만큼 땅만큼 전해주고 싶은 기분이다.

* 함께 읽기에 좋은 책
- 고용살이의 서러움을 느끼고 싶다면: 시대는 다르지만 "오싱"
- 에도시대는 어렵고 힘든 삶만 있나 의심이 든다면: 쾌활하고 유머스러운 "샤바케"
- 글만으로는 분위기를 잘 느낄수 없으니 그림도 보고 싶다면: 만화 오오쿠, 무한의 주인, 바람의 빛

* 권말의 편집자 노트를 보고, 미야베 미유키의 도리모초노(에도 시대 작은 관리의 사건 해결을 중심으로 하는 소설이라고 하네)를 보고 떠오른 소설
- 지방 관리의 분주하고 성실한 일상을 보여 주는 "쇠못살인자", "쇠종살인자"의 판관 디런지에공.

* 북스피어의 이스터에그
- 이번에도 어찌나 귀여운지. 웃음이 절로 터져나왔다. ^^
Posted by smf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