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1. 16. 15:59
* 윤성원 옮김, 문학사상사 펴냄
* 이즈미 교카 문학상 수상작

악의, 불신, 의혹, 거짓말, 망상, 불안, 타락, 밑바닥...

600페이지가 넘는 책에 꽉꽉 눌러담아진 저런 감정들이 나를 힘들게 한다.

'나'의 회고, 유리코의 일기, 가즈에의 수기, 그리고 미쓰루의 이야기. 이렇게 네 여자가 중심이 되며, 유리코와 가즈에의 사건과 관련하여 중국인 밀입국자 장의 이야기가 포함된다.

회고, 일기, 수기의 성격 상 각 장이 일인칭 화자의 입장에서 진행되는데, 그래서 더더욱 힘들다. 한발짝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는 객관성의 여지를 주지 않는데다가, 읽으면 읽을수록, 서로의 관계가 밝혀지면 밝혀질수록 어느게 진실이고 어느게 악의로 포장된 거짓인지 구별할 수 없게 되고 만다.

대기업 여사원이 매춘을 하다 살해되었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졌다는 이 글을 읽다 보면 왜, 어떻게, 누구에게 살해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그녀들의 삶 이야기를 쫓아가는 것만도 힘이 들어 중간중간 책을 내려놓고 쉬어주어야 한다. (의혹과 거짓말과 불행이 넘친다는 점에서는 장의 이야기도 만만치 않다. -_-  단지 주 화자가 여성이므로, 장의 시선보다는 차라리 장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동생 메이준을 따라가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되면 이 이야기의 불행한 여자는 5명으로 늘어나게 되는군. 메이준은 자기 입으로 말하는 게 없기는 하지만...)

자극적인 소재에 혹해서 고른 나 자신이 너무나 어리석게 느껴졌다.

숨 쉴 곳이 보이지 않는 밀폐된 좁은 공간에서 바둥거리면서 숨쉬면서도 옆 사람을 찍어누르려고 안달하는 모습이 너무나 처절하고 힘들다. 가엾거나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그 모습이 두려워서 피하고 싶다. 기리노 나쓰오의 주인공들에게는 동정이 가지 않는다. 그녀들을 이해하고 보듬어 안기 전에 이미 두려워서 피하고, 힘들게 될 뿐이다.

꾹꾹 뭉쳐서 농축시킨 악의가 문장 하나하나마다 흘러넘치는 그로테스크.
바탕으로 했다던 실제 사건도, 표지의 기묘한 가면 같은 그림도, 그녀들의 마지막 모습도 모두 그로테스크하지만, 가장 그로테스크한 것은 그녀들의 마음이다.

* 가즈에가 가장 힘들었다. 우습다 못해 처절하고 두렵기까지한 망상에 잡아먹히는 그녀. 사원증을 내보이며 거리에 서 있는 그녀 부분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 네 명의 여자 이야기가 주로 나온다는 점에서 OUT을 떠올리게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이 일인칭 시점으로 쓰여진 그로테스크가 훨씬 더 무겁고 읽기 힘들다. 다른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이 힘들었다면 이 책에서도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듯.

* 외딴집을 읽고 리뷰를 쓰기 위해 다른 책 읽기를 며칠 쉬었었는데, 그로테스크를 읽고서는 힘들었던 마음을 추스리느라 꼬박 하루 동안 다른 책을 집어둘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해서라면 이 책을 집어드는 건 절대 피할 것.

* 기리노 나쓰오의 다른 책들이 밀리언셀러클럽에서 많이 나왔길래 전체 판권을 샀나, 했더니만 이 책은 문학사상사 판이어서 낯설었다. 편집도 좁고 빽빽하게 되어, 글에서 느끼는 답답함과 힘든 감정을 더 배가시킨다.

Posted by smf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