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 22. 19:08
미야베 미유키의 "레벨7" 독자교정자를 모집한다길래 냉큼 신청. 프로젝트 일정상 무리가 될 수도 있었는데, 하루쯤은 억지를 부리면 쉴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마침 일요일이기도 하고. 한번쯤 해보고 싶었던 경험이기도 하고.

사무실 위치를 소개할 때, "일명 <우주선 건물> 또는 <응가 건물>이지요. 하하;;;"라고 하시더니만... 정말 이미지를 딱 잡아낸 설명. ^^; 직접 보면 아~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건물이더라. 사진이라도 찍어둘 걸 그랬나? ^^

지난 일요일, 10분쯤 일찍 갔는데,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고, 문은 잠겨있고, 팻말도 없고 해서 조금 당황했다. -_-; (초면에는 특히나 약속시간 15분쯤 전에 가려고 노력하는데, 괜히 무리했던 모양-_-; ) 잘못 찾아왔나 싶어서 전화도 해 보고; 10시쯤에 계단을 뛰어 올라오신 대표님이 문을 열어주시더니, 들어가자 마자 인쇄된 종이 뭉치를 터억, 책상에 내려놓아 주신다.

교정지는 뭔가 특이할까, 싶었지만 의외로 그냥 평범한 A4 인쇄라 조금 실망~ 아, 모퉁이에 제본할 사이즈로 표시가 되어 있긴 하더라. ^^

주로 오탈자 보는 교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는데, 그거라면... 회사에서 종종 하던 짓과 비슷한데? -_-;

제안 작업을 할 때 (지금도 제안하고 있지만 -_-) 제출 직전에 하루정도 밤새며 RED작업이라는 걸 한다. 빨간펜으로 교정보는 걸 연상시켜서 레드.
오/탈자 잡고, 용어의 통일성 체크(국영문 혼용이라든지 띄어쓰기 같은거) 등등을 한다. 제안팀 전체가 들러붙어서. 원래 자기가 쓴 건 실수가 안 보이는 법이라, 다른 사람이 쓴 거 크로스 체크. 같은 부분을 체크한 사람이 본인 외에 서너명 정도는 되어야 완료.
(이렇게 해도 오탈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만. -_-)

그래서 그냥 부담 안갖고 시작. 정 거슬리는 거면 굳이 교정한다고 문장/단어 하나하나 신경써서 보지 않아도 잡히기 마련인지라... (내가 번역유감 코멘트를 달아놓은 책들을 일부러 교정본다고 신경써서 본 게 아니니. 그냥 읽다가 거슬리는데 어쩌란 말이야-_-)

다들 딴짓 절대 안하고 너무나 집중해서 작업을. 얼결에 나도 그냥 열심히 읽기만 하다 보니 3시경 완료되었다. 2권짜리라 길다고 해서 조금 긴장했는데~ 코니윌리스 한 권 보다도 짧은 듯. ^^

오자는 그렇다치고... 문맥상 큰 건 하나 잡아냈당. 으흐흐. (사람 이름 잘못. '요시오'에게 가야 하는데 다른 등장인물인 '요시코'에게 가려고 하는 부분. ^^)

나름 좋은 경험이었당. 책 나오면 책도 보내주신다 하고~ ^^ (직장인이 행복한 건 사고 싶은 책 정도는 맘대로 살 수 있는 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공짜는 좋아 ㅠ.ㅠ - 물론 책값이 내 일당보다 싸기는 하다 -_-; )

* 점심을 먹으면서 다른 독자교정자분이, "얼마나 읽으셨어요?" 하길래 "4일째 시작해요" 라고 했더니 다들 움찔. -_-; "1일째부터 시작한거 맞죠?" 까지; 아니 나 읽는 속도는 빠르지...는 않고 그저 보통이라고 생각했는데; 주변에 하도 빨리 읽는 분들이 많아서.

* 레벨 7 개인적인 감상 짧은 메모: 스나크 사냥과 비슷, 멋진 할아버지가 여기에도!, 과연 미미여사지만 역시 10여년이나 된 글이라서 그런가? 프롤로그가 너무 친절 ^^
 
* 교정지를 읽은건데 올해 독서목록에 넣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역시 빼기로. 책으로 읽으면 넣어야지~
그런데 과연 교정지 읽은지 얼마 안 되어 다시 책으로 읽을 기분이 들까나? -_-;

* 책이 나온 후 번역자 분과 뒤풀이 자리를 가진다고 한다. 어머나, 서른 넘으면 완전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건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여러갈래로 새 인연이 생기네? 조금 당혹스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
이 이야기를 했더니 p양 말씀하시길, "네가 낯 가린다는거 다 거짓말이야" 라고.
정말로 낮을 가리기는 한다니까~ 아는 사람이 많은게 아니라 우연찮게 여기저기 인연이 생기는 것 뿐이잖아요~

* 데니스 루헤인의 켄지&제나로 시리즈를 읽다 갔더니만, 글투가 적응이 안되어 처음에는 조금 고전을. 다 끝내고 돌아올 때도 역시 적응이 안되어 다시 데니스 루헤인으로 돌아올 엄두가 안나더라~ 결국 그 날은 더이상 못 읽고, 다음날에서야 겨우 다시 집어들 수 있었다.

Posted by smf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