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2. 23. 22:35
* 정소연 옮김, 북스피어 펴냄
* 2004 네뷸러 상 최우수 장편상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집어드는 건, 때로 실망스러울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quality가 보장되기 때문에 큰 위험은 없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내가 원하는 주기에 맞춰서 책을 내 주지는 않는 법, 무언가 읽고 싶은데 작가로만은 찾을 수 없을 경우, 때로 서평을 이용한다.

서평만으로 책을 골랐을 경우에는 실패할 가능성이 더욱 크다. 오랫동안 꾸준히 그 사람의 서평을 읽으면서, 이 사람, 나랑 이런 코드가 비슷한 분이구나~ 라고 생각한 사람이 추천한 책은 물론 안전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베스트셀러나 자기계발서가 아닌 분야에서, 그러니까 나름대로 매니아층이 형성되어 있는 장르에서 책을 고를 때는 "모두의 호평"이 내게도 좋은 경우가 종종 있다.

작년에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읽을 때 그랬다. 정말로, "모두가 좋다고 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구나!" 하는, 너무나 당연한 깨달음이랄까. 그런 까닭에 특정 문학상 수상작만 찾아 읽기도 하지만. ^^;

"어둠의 속도"도 그 분류에 슬쩍 밀어넣는다.
학술적인 냄새를 풍기는 제목에 움찔 하고 미뤄놓고 있다가, 판타스틱 정기구독을 시작하면서 이벤트 상품으로 받아놓고 (다른 이벤트 상품 책들은 이미 사전에 다 샀다. -_-;) 다른 책들이 쌓여 있어 몇달만에 집어들었는데, 기대 이상이라 하루저녁에 모두 읽어버리고 말았다.

자폐인인 루의 시점과, 3인칭 전지적 작가의 시점이 번갈아 가면서 진행된다.
낯선 감각으로 시작하는 루의 이야기가 처음에는 조금 낯설었는데, 점차 루의 시선을 쫓아갈 수 있게 되었을때는 오히려 다른 "정상인"의 시선이 어색했다.

차근차근 감각과 생각이 진행되는 프로세스를 설명하는 글 속에서의 루는 이해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 튀어나온 루를 이해할 수 있을 자신은 없다. 그렇기에, 루에게 동화하면서도, "그렇지만 넌 그런 것치고는 행복하잖아" 하고 우울한 질투를 품는 나도 함께 존재한다. 잘못임을 알고 있기에 이것은 고통스럽다.

근미래이지만 몇가지 생물학(의학)적인 변화를 제외하면 현재와 거의 같은 생활 패턴이기에, 더욱 더 와닿는지는 모르겠다.

주말 저녁을 투자하여 읽어볼 정도의 가치가 있는 책. :)

* 작가 인터뷰 중에서,
: 어느날, 아들이 들어와 문틀에 기대 묻더군요. "빛의 속도가 일 초에 삼십만 킬로미터라면, 어둠의 속도는 얼마예요?" 제가 "어둠에는 속도가 없단다" 하고 일상적인 답을 했더니 아들이 말하더군요. "더 빠를 수도 있잖아요. 먼저 존재했으니까요."

이처럼 여기에서의 어둠의 속도는 물리적이고 수학적인 이미지라기보다는, 철학적인 명제이다.
그리고 당연하게 빛의 속도 외에는 생각하지 않았던 스스로가 "정상인"으로서 "자폐"를 보는 시선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나도 정말로, 자폐아는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직접 만나보면서도. 그 아이가 이런 내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면... 나는 편협적인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 나아지도록 노력할 수 있을까.

* 자폐아의 시선에서 쓰인 다른 글들: 앨저넌에게 꽃을, 한밤중 개에게 일어난 이상한 사건
: 내겐, 한밤중 개에게~가 가장 발랄하고, (... 발랄하다고 표현하려니 좀 어색하긴 한데, 다른 책들과 비교하니 상대적으로 발랄하게 느껴진다.) 앨저넌이 엔딩만큼 슬프고, 어둠의 속도가 가장 많은 문제를 던져준다. 제목인 "어둠의 속도" 하나만으로도 한참을 생각에 잠기게 된다.

* 너무 간만에 독서노트를 쓰려고 했더니만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는다.
역시나 글은 꾸준히 써 보고 꾸준히 연습해야 해~
Posted by smf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