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6. 10. 11:15
* 권일영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 제 3회 본격미스터리 대상

긴 검은 머리에 검은 옷만 입고 다니는 모리노와 "나"는 보통사람들과 조금 다른 감성으로 연결되어 있다. 책 제목의 GOTH가 말하는 이미지처럼.
GOTH는 이 주인공 콤비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주위의 이야기)를 엮은 연작 단편집이다.

암흑계 Goth, 리스트 컷 사건 Wristcut, 개 Dog, 기억 Twins, 흙 Grave, 목소리 Voice

각각의 소제목이 달린 6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http://labluegirl.egloos.com/3761488 에서 참고한 바에 따르면, 문고판은 순서가 다르다고 한다.

 문고판은
 요루의 장 - 암흑계, 개, 기억 (요루는 여 주인공 모리노의 이름입니다. 한자로는 夜-밤 야-입니다. 그래서 밤의 장이 아니라 요루의 장)
 나의 장 - 리스트 컷 사건, 땅, 목소리
 이런 순입니다.


일단 순서를 따질 필요도 없이 책 자체의 충격이 컸다. 표지와 제목에서 호러를 예감하고, 그래, 오츠 이치를 두권 연달아 읽는 건 정신건강에 안좋을지도 몰라~ 생각하고서는 출근용으로 GOTH, 퇴근용으로는 온다 리쿠의 초콜릿 코스모스를 들고 왔는데...

지하철에서, 에스컬레이터에서, 심지어 횡단보도만 빼고 길을 걸을 때도 손에 들고 읽다가 출근한 후에도 주위에 사람 없을 때 슬금슬금 눈치봐가며 끝까지 읽었다. 후기까지 꼼꼼히...

그리고는 역시 읽길 잘했어!

분위기 자체는 ZOO와 비슷하지만, 관찰하는 장면이 많아서일까, ZOO보다는 감정의 균형이 잡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중간중간 오싹하고 등줄기를 스물스물 기어가는 호러가 느껴지지만 그래도 각 장이 끝날때마다 조금씩 안정이 된다.

그렇지만 책을 덮은 지금도 턱 내려앉았던 가슴이 아직 완전히 진정되지는 않은 책.

쓸쓸함의 주파수, 너밖에 들리지 않아, ZOO,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GOTH 순으로 읽어 왔다.
(암흑동화는 집에 있다. 다음에 읽을 책. -_-; )

쓸쓸함의 주파수를 읽었을 때에는 영상적이고 감각적인 작가라고 생각했다. 그 뿐, 차기작을 살 생각은 없었는데 E양의 calling 이야기를 보고 너밖에 들리지 않아도 구입. 여전히 가련하고 (애절하다라고 GOTH의  작가 후기에는 되어 있다.) 부드러워서 남성 작가라는 게 더욱 놀라웠던 작품.

그리고 후기를 보고 구입한 ZOO에서, 오츠 이치는 당장 완소작가로 등극. 권두의 seven rooms 느낌이 어찌나 강렬하던지. "천재작가"라는 수식어가 가슴을 찔렀댈까. 동년배(오츠 이치는 1978년생)에 대한 엄청난 질투심도 함께 생겨났다. ㅠ.ㅠ

그리고 GOTH.
"꽃의 노래"에서 태연하게 서술트릭(...인정하지 않을 사람도 있겠지만 내게는 그랬다.)을 사용할 때도 속아넘어갔지만, GOTH에도 중간중간 서술트릭이 섞여있다. 첫페이지로 다시 넘어가서 확인하고 읽고 싶은 충동이 이는 작품이 몇 개 있다. 의도가 느껴져서, 단편집 뒤쪽으로 갈수록 이게 트릭이구나! 눈치채게 되기는 하지만, 트릭이 드러나거나 범인이 밝혀졌다고 해서 작품의 재미가 손상되지는 않는다.

화자인 "나"의 시선을 따라가지만 "나"는 나하고는 겹쳐질 수가 없다. "나"의 감성은, "seven rooms"에서 사람을 무감각하게 썰어 조각내던, 그 살인마의 시선과 닮았다. ("나"가 그보다 똑똑-이라기보다는 현명?-했다는 게 다행이다)

* "성격이상자를 불러들이는 페로몬"을 분비하는 모리노가 사건의 시작점이 되었던 GOTH. 혹시나 속편을 쓸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운명이 있는" 여동생이 중심이 되는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 제발 써 줬으면~!
(천재는 내키면 쓰면 되지만 평범한 독자는 이렇게 비굴하다. 제발 써주세요~ 엉엉)

* 학산에서 오츠 이치의 책들을 3권 더 계약한 모양. 올해도 꾸준히 지르겠고나~

Posted by smf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