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0. 19. 12:45

우지에서 너무 느긋하게 걸은 바람에, 나라에 도착하니 마음이 조금 급해졌다. 팜플렛을 보니 도다이지가 4시 30분, 가스가타이샤가 5시? 나라에 도착하니 이미 3시가 다 된 시각.

"나라 지도 믿지 마세요. 생각보다 멉니다. 웬만하면 버스 타세요"

라는 경고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용맹하게 걷기 시작했다. 지도를 믿고.

근데 정말.. 지도 뭔가 이상해! 너무 멀어! OTL
땡볕에 30여분 걷다보니 정말 탈진 수준. 너무 힘들어서 편의점 들어가 맥주를 사고, "빨대 주세요" 했더니 점원이 "맥주에 빨대요??" 하고 미친년 보듯이 -_- 보더니 빨대를 꺼내준다. OTL

친구가 물을 건네 줬으나, "물 따위로 힘이 날 리가 없잖아!" 하며;;

겨우 나라공원 끄트머리가 보인 것 3시 40분이 넘어간 시각. 여기까지 왔는데 못보는 건가, 그른 건가! 사슴이라도 볼 수 있을테니 만족해야 하나!! 하고 좌절하다가 팜플렛을 다시 확인하니 "하절기 5시 30분까지"

올레!!

미친듯이 더운 교토의 여름 중, 딱 하나 좋은 건 관광지의 개장 시간이 길어진다는 것.
겨울엔 4시에 문을 닫는 곳도 있는, 정말 지나치게 빠른 교토의 밤. -_-;;

그제서야 조금 여유를 갖고 반 달리던 발걸음을 늦췄다.


나라 공원 방문기 어디에나 있는 사슴 경고문.
리얼한 그림과 직설적인 한글 경고가 마음을 움직인다. 그리고...

정말로 "문다" "들이받는다" "돌진"한다. -_-;;;;
맞지는 않았지만 나머지 세가지는 다 당했다능....;;;;


숨막히는 사슴의 뒤태.JPG

"시카센베"라는 사슴먹이용 과자를 파는데,
"자, 이리 와서 하나씩 먹어봐~~ 착하지~~" 하는 백설공주(디즈니) 분위기를 상상했으나...

센베를 꺼낸다. -> 사슴들이 "돌진"한다.  -> 치울 새도 없이 하나를 뺏긴다. -> "이러면 안돼!" 하는 기분으로 높이 들어본다. -> 사슴이 "들이받는다" -> 꺄악 비명을 지르며 도망친다 -> 쫒아와서 엉덩이를 "물렸다"

OTL

주위를 둘러보니 어머 사슴~ 하고 시작했던 사람들 (특히 커플)이, 나중에는 "무서워~!!"하며 여기저기 도망가는 사태가...

나라의 사슴은, 무섭습니다!
먹이를 주지 않으면, 다른 손에 들고 있던 팜플렛(종이)을 씹어 먹던데요. -_-

(나중에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일본인 여행객에서 "나라에서 사슴이 내 팜플렛 먹었어!"라고 했더니, "사슴은 원래 그런가봐. 나도 규슈(어딘가)에서 바다를 보고 있는데, 사슴이 오더니 뒷주머니에 꽂아뒀던 내 팜플렛을 먹었어" 라고. -_-; )


단체여행객이 많았던 도다이지. 입구에 한국인 단체 여행객도 있어서, 살짝 가이드 설명도 얻어들을 수 있었다. ;;
(그러고 보니 나 캄보디아 갔을 땐 옆 팀의 일본인 가이드 설명 주워들었었지. -_-;;)


동양 최대의 불상이라는 대불.

도다이지...라기보다는 대불전만 입장료가 있고, 다른데 흩어져있는 도다이지 산하의 작은 불당들은 따로 입장료가 없는 듯. 너무 넓게 펼쳐져 있어 들르는 사람도 별로 없는 듯 하긴 하지만. ;


일명 "부처님의 콧구멍"
여기를 통과하면 액땜한다고. 한국에서 찾아보니 주로 유치원 애들 단체 체험 때 줄서서 지나가고 한다는데...
평소엔 줄이 굉~~장히 길다고 한다. 그런데...

도다이지 입구에서 바글바글했던 사람들이, 대불전 한바퀴 돌고 기둥까지 오니까 아무도 없이 한산하다.
덕분에 친구랑 "너 해봐!" 하고 서로 밀어 볼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엔 친구 도전! 
그런데... 친구가 도전할 무렵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구경-_-하기 시작했다.
절반쯤 빠져나온 친구가 "앗 도와줘!"라고 했더니 그 와중에 친구 사진찍고 있던 정신없는 나를 대신해서 어떤 외국인 아저씨가 쑤욱 뽑아!!! 줬다. ;;;;;

그리고 할만한데? 라고 하는 친구.
으음 여기까지 왔는데.... 싶어서 나도 도전하기로!

확실히 좁긴 한데, 꽉 끼여서 못움질일 정도는 아니고.. 체형보다 좀 유연하다면 더 쉽게 빠져나갈 수 있을 듯한 구멍이다. 이정도면~! 하고 상체를 빼는데, 눈앞에서 날 찍고 있던 어떤 남자와 눈 마주침. -_-;;

"아, 고멘."이라고 하면서도 카메라는 안치우던데. 초면에 남 사진찍는 걸로 모자라서 반말까지? 아... 다시 생각해도 열받는다. -_-; 나중에 친구가 쟤 한국인인것 같다고 해서 더 열받음. -_-;

여행지에서 다른 사람 사진 찍지 맙시다;; 설마 어딘가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진 않겠지. ㅠ.ㅠ

대불전을 나와서 또 우리 멋대로 뒷길로 돌아가다가 만난 사슴.


교토 주변의 동물들은... 지들이 포즈를 잡는다 -_-;
나라의 사슴은 물론이고 오전에 만났던 우지의 도마뱀, 그리고 나중에 만나는 아라시야마의 곤충들까지도,
사진찍으려면 얌전히 앉아서 포즈;;를 취해주더라.


보라색 색연필로 표시한 길을 쭉 따라 걸었음. (아래쪽이 JR나라역)

중간의 녹색 별이 도다이지, 그리고 그 위로 빙 돌아서 가스가타이샤로 가는 길목에 있는 녹색 별이...


사슴이 도로를 정ㅋ벅ㅋ.JPG

도다이지 정문 앞과 이쪽 길이 사슴이 제일 많다;
굳이 넓은 나라공원에서 헤매지 말고 여기서 실컷 만나면 됨;;


그러다 보니 얼결에 가스가타이샤도 정문이 아니라 뒷문(?)쪽으로 입장.
석등록이 잔뜩 늘어서있는 얕은 계단길 분위기가 예쁘다.


하지만 정성스레 만들어놓은 모래정원도 사슴이 정ㅋ벅ㅋ ;;;;

울타리까지 쳐놓은 모래정원에 선명하게 찍혀있는 사슴발자국.


센베에 달려들지만 않으면 그림같은 사슴들인데;

평생 볼 사슴을 다 본 기분으로 나라공원을 뒤로 하고, 옛 나라 거리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나라 마치로...


...갔으나 5시 30분이 넘어서 관광안내소는 폐점. 내부 견학이 가능한 유명한 "창살의 집"도 Closed.


관광지 다운 예쁜 하수구 뚜껑;


나를 헤매게 만들었던 나라마치 지도.
분명히 길 끝부분에 JR 역이 있는 것 같은데 표지판은 찾을 수 없고,
버스 기다리는 할머니들도 그냥 나라역으로 가라고만 하고....ㅠ.ㅠ

배는 고프고, 해는 넘어가고, 길은 잃었고, 근처일 것 같은 역은 안보이고... -_-;;

결국 열심히 차를 닦고 계시던 택시 운전수 아저씨께 물어봤다. "길을 잃었는데 역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길을 헤맬 때는 택시 기사분이 진리!라고 생각했으나 역시 여기서도 JR 나라역으로 가야 한다는 답변만...
그래서 결국, "그냥 택시 탈래요 ㅠ.ㅠ"
하고 택시를 탔다. (본인 차례가 아니었는지 대기하고 있던 다른 택시에 태워주셨음)

흑, 덕분에 기본요금거리를 택시 타 보고, (택시로 가니까 엄청 멀게 느껴졌던 나라역까지 순식간에 도착. 40여분 넘게 걸어서 왔었는데; ) 자동문인 일본 택시도 타봤으니 만족해야지 뭐;; 나름 열심히 지도를 준비해 갔는데 예상외로 종종 길을 잃게 되더라;


피곤해, 빨리 돌아가고 싶어! 생각밖에 안들어서 역 내 편의점에서 산 주먹밥과 맥주.
(맥주는 빠지지 않지 말입니다?)

교토행 급행을 타고 다시 교토로.





Posted by smf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