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5. 18. 11:03

어릴 때의 사진과 똑같은 장소에 똑같은 포즈로 어른이 되어 다시 찍은 사진을 가끔 본다. 

나주성당, 아니, 나주 천주교회는 내게 그런 느낌을 불러 일으키는 곳이다.


화순까지 내려간 김에 엄마와의 여행은 나주까지 계속.

유치원에 다닐 무렵 나주에서 살았었다. 엄마는 "예전 살던 곳이 여기야" 하고 구체적인 집 위치까지 보여주셨지만... 그만할 때의 기억이 세세할 리 만무. 단지, 집이 있던 골목길을 나와 큰길을 조금 따라가면 육교가 있고, 육교를 건너면 "천주교회"가 있었던 건 생생하게 기억난다. 어린 마음에도 가까운 거리였지만 지금 보니 정말 코 앞. 몇 년 전에 방문했을 때 까지는 육교가 있었는데, 이번에 가보니 육교가 없어져서 조금 서운했다. ㅠ.ㅠ



마치 학교처럼, 정문을 들어서자 마자 작은 운동장이 있고 입구 건너편에 성모상이 있다. 

운동장은 사실 기억이 안 나지만, 저 성모상은 사진에 자주 등장해서 기억이 뚜렷하다. 6~7단 정도의 계단 위쪽에 위치한 소박한 성모상인데, 유치원생이 보기에는 성모상도 무지 커 보였고, 계단도 무지 높았었다. 어른이 되어 다시 방문했을 때, 계단이 이렇게 적었다고?? 하며 거의 패닉에 빠졌던 기억이;;


운동장 오른편엔 성당 본관보다 더 큰 부속건물이 있고, (사무실 및 강당 등)



뒤쪽엔 사제관이 있다. 음... 예전 사제관은 지금 현 해롤드 주교기념관으로 쓰이고 있으니 사제관도 신축건물로 봐야 하나? ;;



클래식한 분위기의 종탑. 줄이 매여 있는 모습을 보면 지금도 사용중인 듯.



성당은 서양식 건물이지만,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보이는 건 무려 미닫이! 신발을 벗도 미닫이 문을 열고 성당 안으로 들어간다.


나중에 집에 와서 확인한 거지만, 현 해롤드 주교(미국 태생)가 사목했던 성당은 대부분 신발을 벗고 들어가게 되어 있다고 하네.



나무 천장에 나무 의자. 십자가의 길도 나무액자 틀이고, 옛날 붓글씨로 각 처의 설명이 되어 있다.



전체적으로는 좁고 긴 형태. 



입구쪽의 사다리가 인상적이다. 옛 집의 다락 사다리같다. 칠도 옛날 분위기가 나고......



정체는 성가대석! 


성당을 나와, 뒤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순교자묘역이 있다.



박해 때 순교하신 4분의 봉분이 모셔져 있는데... 유해를 어떻게 거두어 왔는지는 모르겠네; 


예전에 배운 기억을 조금 떠올려 보자면... 조선 천주교는, 선교 사상 유래가 없는 "자생적" 교구라고 한다. 처음 들어올 당시부터 종교가 아니라 학문("천주학")으로 들어왔고, 선교사나 사제 없이 한참을 버텼다. (청나라 사신으로 따라갔다가 서학 관련 서적을 입수하고 "검토할 가치가 있는 학문"이라고 판단하여 책을 숨겨 들어왔다...고 한다. -.-;; )



순교자 묘역을 되돌아 나오면 보이는 정원 주변으로 십자가의 길이 조성되어 있고, 



정원 중간 부근에는 순교자 경당이. 돌무덤같아 보여 들어가기도 살짝 겁이 났다. 문도 무진장 무겁더라.



경당 안에는 작은 제단이 있고, 그 안쪽으로 텅 빈 사각형의 공간이 있다. 위는 뚫려 있는데, 사면이 모두 막힌 무덤을 형상화 했다고 설명이 되어 있네.



저 공간을 위쪽에서 보면 이런 느낌.



사목 중 돌아가신 신부님의 무덤도 있다. (미니 고인돌 같아서 인상적이다.)

세심하게 가꾸어진 정원과 나무들. 자세히 보면 각 구역별로 모두 담당자가 정해져 있다.

(잡초가 많았던 옥터성지와 대조적이다. -물론 옥터성지도 관리는 하고 계신듯 하지만, 관리 인원에 비해 정원이 넓은듯;)



"현 하롤드 대주교 기념관"은 잠겨 있다. ;; 

나중에 사무실에 문의도 해봤는데 안 열어주대;; 수녀님 말씀으론 고가의 물건이 많은 편이라 평소에 잠가 둔다고.



정원 주변 오솔길은 대나무로 둘러싸여 있고.



오솔길의 끝자락에는 작은 한옥이 있는데, 까리따스 수녀원 한국 진출 첫 본원이라고 한다. (총 본원은 일본)



여기서 의외의 엄마의 패션 감각을 볼 수 있었는데, 


"예전에 무슨 행사에 갔다가, 수녀 청원자들을 봤는데 말야... 월남치마도 아니고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펑퍼짐한 치마에, 60년대에나 입었을 법한 블라우스를 입고 있더라고. 얼마나 촌스럽던지..."


......엄마는 그 옷들을 보고 수녀 되는 건 좀...... 이라고 생각했다고 한신다. ㅋㅋ



수녀원 정면의 성모자상. 까리따스 수녀님들이 직접 만드셨다는데... 한복입은 성모자상으로 꽤 유명하다.


문이 잠겨 있어서 못 들어가나, 싶었는데 사무실에 문의해 보니 관리하는 수녀님께 연락 주셔서.. 수녀님 안내로 한참을 돌아봤다. 까리따스 역사도 처음 알고. 


어릴 때 참 자주 갔었다고 하는데 (엄마 아빠 증언) 가장 가까운 놀이터였던 듯. 그런데 성모상이 있는 운동장만 기억나고... 전체를 돌아본 건 이번이 처음이구나~ :)



Posted by smf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