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5. 31. 00:00

선거일, 남들은 노는데 나만 일해? 하는 억울함이 들어서인지 종일 피곤하길래, 지루함인지 피곤함인지 갈피를 못잡고 (그러고 보면 토요일에 오라버님 뵈올 때까지 너무 급경사로 비탈길을 올라갔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_-) 방황하다가 퇴근길에 대학로에 들러보기로 결심.

오마뮤에서 최근 단관을 진행해서 평이 괜찮았던 "내일은 천국에서'를 보러 갔다. 연우소극장은 처음 찾아가 보는데, 공연기획이다-는 전에도 들어봤었는데... 무슨 공연이었더라?
공연을 볼 때, 처음엔 제목만 보이더니 이젠 출연진, 그리고 기획사까지도 한번 더 눈길이 간다. (일년전이라면 신경도 안 썼겠지-_-)

연우소극장은 대학로 끝자락, 혜화동로타리를 지나서 있더라. 그쪽길로는 알바이신 갈 때 빼고는 들러본 적이 없어서 길을 헤맬까봐 조금 일찍 가려고 마음은 먹었지만, 너무 일찍 간 덕분에 티켓박스가 아직 안 열었다. 뭔가 먹으려고 알바이신에 찾아갔는데 자리 없어서 그냥 나오고-_-; 출발은 그닥 좋지 않았음.

굳이 뮤지컬 대신 연극을 선택한 이유는, 이전에 강작가님과 술먹을 때 했던 이야기가 어디 한구석에 걸려서 편안하지 않았던 것도 한 몫하고... (오라버님이 정극도 하시는데, 연극도 좀 더 봐둬야지 하는 생각도 있고-_-)

넘버를 볼때 시놉을 읽고, 프로그램보고 공부했었는데도 혼란스러웠던 경험을 토대로 삼아, 프로그램을 구입해서 열심히 읽어줬다. (사실 공연평을 보고서는 무슨 말인지 꽤나 혼란스러웠거든) 오페라 아리아의 스토리를 따라서 진행된다는데, 다행히도 대부분 익숙한 아리아들이어서 조금 안심...

...했으나 공연장에 들어서니까 긴장되더라. 꽉 채워도 100명이 들어오기 힘들어 보이는 작은 공연장이었는데, 부채꼴 중 호가 무대 벽, 그리고 두 변이 관객석이다. 일찍부터 줄서서 맨 앞에 앉았는데, 무대벽이 유리(벽 안쪽 통로의 조명을 켜면 유리, 끄면 거울)로 구성이 되어 있어서 맞은편 벽에 내 모습이 비치더라. 큰 대형유리가 아니고 멀티비전처럼 사각형이 조각조각 배치되어 있는데 그래서 더 비현실적으로 보여주는 효과도 있는 듯.

공연의 영어제목은 opera stalking. 직접적으로 내용을 알려주는 제목이다. 우리말 제목은 오페라 산책, 오페라 스토킹, 내일은 천국에서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는데... 오페라 산책은 극중 주인공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제목, 내일은 천국에서는 호프만의 뱃노래에 나오는 가사. 난 오페라 스토킹이라는 제목이 더 마음에 드는군.

복잡한 이야기라고 생각이 되었는데, 등장인물은 의외로 적다. 5명.

주성보 PD : "오페라 산책"의 PD. 아내와은 7년 전 사별
정혜은 : "오페라 산책"의 신임 진행자. 민성의 애인
이민성 : 혜은의 애인. 한때 성우였고, 가수로 전업을 시도했으나 실패
김진호 : "오페라 산책"의 음악자료 담당 (작품소개에는 방송도우미라고 나왔네. 그런 직업이 있나?)
주묘경 : 주성보의 딸

그리고 관계는... (내맘대로 해석이 되어있음)

주성보 : 아내의 배신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음. 혜은의 모습에서 아내를 겹쳐봄
정혜은 : 주성보 PD에 대한 동경. 혜은이 민성을 대하는 태도가 애매함..잡은고기에게 미끼주지 않는다 식?
이민성 : 일에서 좌절을 겪고, 위안을 구함. 실제의 혜은보다는 묘경의 혜은흉내에서 위안을 얻음.
김진호 : 혜은에 대한 호감...이 납득 수준을 넘어서서 소유욕에 가까워짐
주묘경 : 혜은 흉내를 내며 민성에게 접근. 이게 더 스토킹 적으로 보임

스토킹 이야기라고 소개는 되었는데, 등장인물들 심리가 모두 불안정해서 이야기를 쫓아가기가 힘들었다. 대사 자체가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닌데 시공간이 얽혀있다 보니 혼란스러운 장면이 몇 군데 있었군.

혼란스러워서 이해를 못했는지, 아니면 의도적인 혼란이었는지 모르겠는데...

1. 주성보가 아내의 치정사건에 분노해서 아내를 찔러죽였다면, 어떻게 계속 PD질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착각이었다면 아내는 어떻게 죽은거지?)
2. 그러한 아내에 대한 애정이든 증오든, 그런게 딸과의 관계에서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게 신기하다. 묘경이 과거의 아내 대역을 하는 장면도 있는데, 그런 거라면 딸에 대해서도 비정상적으로 집착하거나 증오하거나 그런 심리가 있어야 하지 않나...
3. 정혜은은 주성보를 동경한다면서 7년전 사건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첫번째 의문과 연관되어) 방송국에서 쉬쉬 한건가? 그리고 위의 배역 설명에서도 언급했지만, 민성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수가 없다. 오래된 연인이라?
4. 주묘경이 왜 하필 민성을 선택했는지. 왜 하필 혜은 흉내를 냈는지. 왜 민성에게 집착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
5. 김진호와 이민성의 심리는 그나마 쫓아갈 수 있겠더라... 그런데
6. 주묘경의 마지막 대사가, "그러나 리골레토가 시체자루를 열었을때, 들어있는건 딸이었다" 였는데... 묘경의 죽음은 이해가 되나, 그럼 묘경이 민성을 대신해서 죽은게 되어야 하지 않나? 민성은 언제 죽은거야? 민성도 묘경과 함께라면 리골레토에서 인용하는 게 잘못된거 아닌가...

공연이 끝나고 프로그램을 다시 복습했는데, 벌써부터 순서가 헷갈리기 시작하더라.-_-;

연극은 어려워! 라는 생각이 다시한번.-_-;
보고 나오는데 앞에 걸어가던 분들이, "뮤지컬만 보다가 이런거 보니까 머리아프지?' 하는데 공감되더라. -_-;
Posted by smf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