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7. 2. 00:00
"라쇼몽"은 익숙한 제목이지만 본 적은 없다. 나생문의 포스터는 뭔가 야리꾸리한 분위기인데다가 시놉도 그렇게 구미를 당기지는 않아서 그냥 있었는데, 평이 하도 좋기도 하고... 일요일에 공연 스케줄이 없는데 (비싸거나 안 땡겨서 망설이고 있는 작품들이 많아서 말이지. 맘마미아, 미스사이공, 브루클린 등...) 나생문이 그날 막공이기도 하고 해서 보러 가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전날 본 클로져도 김지호 막공날이었군. 뮤지컬은 막공때 이벤트도 있고 관객반응도 더 활발하고 그러던데 연극은 잠잠하대?)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예술의 전당 공연장들은 다들 평이 좋은 것 같다. 오페라 극장에서는 지킬, 토월극장에서는 벽을 뚫는 남자를 봤었고, 자유소극장은 첫 방문.

예술의 전당처럼 큰 공연장은 공연장 진행이 매끄러워서 관람 전 관객이 편하다. 동숭홀도 괜찮았지만 아르코도 매우 훌륭했었고... (엘지아트랑 국립극장은 진행요원이 어땠는지 기억이 안나는군. 극장 용은 매우 별로였다.-_-)

좌석배치도를 확인해 보려고 했더니 기존의 좌석 위에 종이로 새로 배치도를 붙여놓아서 당황. 설마 좌석을 들어내고 다시 구성했나? 싶었다. 입장할 때도 까맣고 좁은 골목으로 안내를 하는데...

1 층 객석은 무대위에 있더라. 무대/객석을 다 쓰는 게 아니라, 원래 무대공간이었던 부분을 돌출형무대로 만들고, 3면에 임시객석을 만들어서 정말 작은 소극장 무대를 구성해 놨더라. (임시객석은 접는 의자. 임시좌석치고는...사실은 일반 소극장 무대보다도 편안한 좌석이었다.)

입장통로 양쪽에 심어져(막공날 쯤 말라가고 있었으니까 심어져 있는 게 아니고 세워져 있는 거라 해야 하나?) 있는 대나무들. 그리고 객석 사이사이에도 대나무 대가 있고, 1층석과 2층석의 경계에도 대나무가 빽빽이. 무대 뒤쪽의 배경(및 통로)으로 활용되고 있는 대나무들과 어울러져서 진짜 대숲의 분위기를 연출하더라. 내가 본 것 중 가장 인상적인 무대 중 하나로 기억될 듯.

"사람은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내용만 기억한다" 일까.
엇갈린 진술들이 의도적이라고 보이기 보다는 그 상황에서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왜곡되어 기억되었구나, 싶었다.
(그래서 내가 캐논 카피를 사랑한다니까.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가장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분은 부인 역의 장영남씨. (부인 역이 상황에 따라 가장 급변하는 캐릭터이기도 하지)
스 님 역의 최용민씨는 무대에서 3번째 뵙는건데 (두 번은 날보러와요) 프로필을 보고서야 누군지 알아챘으며, 가발장수역의 서현철씨는... 바로 두달 전 노이즈오프에서 뵌 분인데도 못 알아봐서 집에 와서 두 작품의 프로그램을 뒤져서 비교해 보고 좌절했다. -_-;
혼령과 나무의 표현 방법이 신기했고...

회상과 재연이 많이 들어가 있는 작품이라 암전이 굉장히 많은데, 자칫 지루해 질 수 있는 암전 동안 타악 소리가 격정적으로 올리곤 해서 정신이 번쩍번쩍 들더라.
그리고 매우 정적일 거라고 기대했던 시놉과는 달이 엄청나게 격정적이고 몸을 많이 움직이더라. 소극장 무대에서 배우들이 서지 않은 부분이 거의 없는 듯. 이쪽끝에서 저쪽끝까지.

사실 어제 술먹고 오전부터 팬질준비하느라 몸이 노곤해서 째고 쉴까, 하고 잠시 망설이기도 했었지만 꿋꿋이 보러 나오길 정말 잘했더라. 만족~

* 오늘의 최악관객 : 내 앞자리에서 맨발을 의자 위에 올리고 무릎 끌어안고 졸고 계시던 애 엄마. 왜 오셨나요-_-;


[팬질잡담]

어제 공연을 보고 나오면서 오라버니께 전화를 드렸더니 대뜸,
"늬들은 왜 공연 잘 보고 나와서 전화하니?" 하고 버럭 하신다. -_-;
"오빠 우리 부럽죠?" 하고 놀려줬더니 오늘 연극 보는 중에 문자를 보내셨더라.

"브루클린 보러간다. 메롱~" -_-; 이 분 자랑하시는 것 좀 봐~

p양이 답문을 보내드렸다.
"어제는 김종욱하고 클로져 봤구, 오늘은 나생문 봤어요~"

"그래 잘났어~"라고 답하시더라. -_- 그러니까 저희 열심히 보러 다닌다니까요~
Posted by smf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