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08.05.21 수유쿠션, 겉싸개, 속싸개
  2. 2008.04.10 가정교육
  3. 2007.08.16 천국과 연옥 2
  4. 2007.07.18 두루마리 화장지를 걸어두는 법
  5. 2006.12.26 딸사랑?
  6. 2006.12.24 할머니 장례식
  7. 2006.12.22 외할머니 돌아가시다
2008. 5. 21. 09:52
집에서 시간날 때 무얼 하냐면...

출산용품을 만들고 있다. -_-;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동생이 임신했는데,
출산용품들, 꽤 비싸더라.

"아기이불 세트가 25만원이야" 하길래, 뭐얏? 까짓거 내가 만들어 줄께! 라고 이야기 했다가...

이불은 물론,
속싸개 * 3, 겉싸개, 그리고 수유쿠션까지 만들게 되어,
한동안 틈날 때마다 줄기차게 재봉틀을 돌려댔다. -_-;;

결과적으로 구매하는 것보다는 50%이상 저렴하게 장만은 한 것 같은데,
...내 일당이 그보다 세지 않을까? -_-;

구름무늬 천의 수유쿠션, 물고기 그림이 있는 겉싸개, 그리고 아기돼지 그림의 속싸개 (접혀있음)를 동생에게 보내기 전에 기록삼아 사진 찍다.

Posted by smfet
2008. 4. 10. 16:42
가정교육이랄까 가풍이랄까...
하튼 일상 풍경.

1. 동생한테서 문자가 왔다.

"어떤 아줌마 지하철에서 손톱깍고 바닥에 그냥 버려
 저러면 쥐가 먹고 아줌마 행세하는데"

(이건 옹고집전에서 나온 이야기지만... ^^
손톱은 당연히 꽁꽁 싸서 버려야 하는거 아니냐고~)

2. 음식을 남기는 걸 무진장 싫어한다.
   어릴 때부터 엄마한테 교육받았다.

"음식 남기면, 죽은 다음에 지옥가서 그거 다 먹어야 해."

...개인적으로 지옥의 불구덩이보다 남은 음식 먹어치우기가 더 무섭다. -_-;;






Posted by smfet
2007. 8. 16.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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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7. 18. 11:49

우리집 화장실에서는 두루마리 화장지를 쓴다.
무려 3겹 엠보싱 향기나는 화장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실 처음엔 걍 1+1이어서 쓰게 된 거지만, 쓰다보니 두겹 화장지로 복귀를 못하겠어 -_-;; 그래서 이후로 애용하고 있는 세겹!

 어느날, 화장실에서 우연히 보니까 곰돌이가 거꾸로 된 상태로 걸려있었다. 어라 곰돌이가 뒤집어졌네? 바꿔놔야지~ 라고 생각하고서는 깜빡했는데, 우렁동생(-_-)이 다녀간 이후 곰돌이가 똑바로 있길래 전화해서 물어봤다.

"화장지 다시 걸어놨어? 왜?" 라고 물었더니...

"그냥 접을 때, 가능한 한 그림 염료가 피부에 안 닿는 쪽으로 접히라고 그렇게 걸어뒀어."

(뭐 별 영향은 없을 것 같긴 하지만 ^^; ) 그래서 다시 올바르게 걸려 있는 곰돌이. 항상 어느쪽으로 거는 게 더 잘 풀릴까 고민하다가 결국은 대충(-_-) 걸어 두었었는데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더라~

Posted by smfet
2006. 12. 26. 17:50

할머니 장례식 후 광주에 들렀다. 신혼여행 끝나고 동생이 집에 들른다고 해서 그것도 볼 겸.

근데, 현관 앞에 못보던 까만 커다랗고 맨들맨들한 은행사이즈만한게 있네? 대야 가득히...
별 신경 안썼는데 엄마가...

"아빠가, 선영이 차 해주게 차나무 심어야겠다고,
 일부러 다시 산에 가서 따온 차 씨란다.
 나중에 밭 일구면 거기다 심자고..."

우리 아빠의 행동도 상상 이상이다. =.=

난 단지, 엄마가 덖어준 차 마시다 보니까 저급은 못마시겠어~ 라고 했을 뿐이다. -_-;
(지금 집에서 보리차 대신 마시는 녹차는 엄마가 곡우 때 따서 덖은 야생녹차)
Posted by smfet
2006. 12. 24. 00:00

장례식만이라면 사촌형부(지역방송이지만 TV 사건 어쩌구에도 나왔었다. 재연까지 해서-_-;)쪽을 참석해 본 적이 있지만, 전체 장례절차는 처음 경험해 보는 것.

엄마가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고 달려간 게 목요일 아침, 그리고 점심무렵 임종하셨단다. 임종을 지킨 사람은 엄마랑 작은 할머니, 그리고 외할아버지.
(우리 엄마도 임종은 처음 봤다고)

임종 후 병원(장례식장)에 연락을 하면 상태를 묻고 바로 차가 달려온단다. 그리고 얇은 패드와 함께 입/코/귀를 커다란 천으로 감싸고, 서너군데 묶은 후 들것에 실어서 영안실로 알아서 옮긴단다.

나는 둘째날 새벽에 내려갔으나 도착했을 때는 입관이 진행되는 도중. 조금 더 빨리 도착했으면 입관까지 볼 수 있었을 텐데 금요일이라 그런지 차가 좀 밀려서 막 입관이 시작된 후에 도착하게 되었다. 입관은 염을 하여 목관에 넣는 데까지. (이 과정은 염쟁이 유씨를 본 덕분에 대충은 알고 있음)

장례식장은 분향소와 손님들에게 식사를 대접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고, 향 피우고 영정 사진 놓는 일반 분향소 말고, 십자가가 있는 기독교식 분향소도 따로 있다. 전부 4곳이 있었는데 우리 할머니 가시던 날은 전체를 할머니 혼자 쓰셨음.

이틀 밤을 거기에서 새고, (몸이 못 버티니까 중간중간 아무데서나 쓰러져서 자고-_-) 사흘째 되는 날 오전에 발인.

할머니 영정사진은 당신이 30여년 전부터 직접 준비해놓으신 사진이더라. 죽으면 관에 같이 묻어달라는 보따리도 하나, 그리고 직접 준비하신 수의... 묻히신 곳은 10여년 전에 마련해 놓은 가묘. 죽을 준비를 언제부터 하고 계셨던 건지.

치매가 시작된 건 10여년 전, 거동이 힘들어진 건 4년쯤 된 것 같은데... 최근 1년은 나도 못알아보실 정도였고.

장지에서 석관에 다시 시신을 옮기고, 목관은 태운다. 땅을 파고 석관을 묻은 뒤 둘레를 장식하는 돌을 두르고, 흙을 다지고 잔디를 심어서 마무리. 상복을 입은 채로 제사를 지내고, 35제를 하지 않고 3일장으로 끝내는 경우에는 상복을 모두 벗어 (이것도 서열에 따라 벗더군) 태운다. 할머니가 입으시던 옷이랑 쓰시던 물건도 함께 태우고.

태운 후에 떠나는 인사로, 상복을 벗고 다시 묘에 절하고,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한번 제사를 모신다. 이걸로 3일장이 완료.

(35제를 하는 경우에는 5일째 되는 날 또 제사를 지내고 탈복, 49제를 지내는 경우는 49일째 되는 날 탈복...)

겨울인데도 봄날씨처럼 맑고 화창한 날이었고, 손님들도 많이 오셨고 (우리 외가는 어떻게 7촌까지 알고 지내는 건지-_-; ) 장례절차 등등도 수월하게 치뤄졌고..

엄만 무엇보다 할아버지보다 할머니가 먼저 가셔서 다행이라고, 곱게 가신 거라고 하시더라. 고생만 하시다가 가셨지만 가실 때는 좋고 편하게 가신다고.

상주가 우리 외삼촌들이었는데, 사실 삼촌이라기보담은 내 가장 오랜 남자친구들이었으니까, 상주랑 이렇게 이야기많이 해 본 것도 처음인 것 같다. 막내 외삼촌 말로는, 상주 자리에 있으니 그냥 계속 눈물만 나더란다. 하룻 저녁 지나고 나니 눈물이 그치려나 싶었는데, 누가 와서 절하고, 맞절하다 보면 또 눈물이 마구 쏟아지더라는...

자식들 모두 결혼하는 거 보고 가셨고, 친손녀도 보셨고, 내동생 결혼하는 것까지 보고 가셨으니 (이걸 알고 가셨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 사실 우리 막내 삼촌의 부인...그러니까 외숙모는 내 동생 친구다. -_-; 막내 삼촌이 나보다 한 살 어리다 보니 그러면 안되지만 삼촌이랑 나는 서로 이름을 부르고 말 놓고 지내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습관적으로 외숙모에게 "소연아~!" 라고 이름을 부르고 있더라. -_-; 근데 아무도 어색해하지 않는다. -_-; 심지어 외숙모도 "네~!"하고 대답한다. -_-;;

Posted by smfet
2006. 12. 22. 04:30
목요일(21일), 고객하고 잠시 일 이야기를 하고 자리로 돌아왔더니 엄마한테서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회사업무시간에 전화하는 건 드문 일이라서, 뭘까 하고 전화를 걸었더니

울먹이는 목소리로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란다.

우리 할머니는 10년 가까이 치매를 앓고 계셨다. 치매라는 게, 한번에 확 가는 게 아니라 조금씩 상태가 심해지는 거더라.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땐 분명히 아직 정정하셨던 것 같은데 어느 때부터인가 조금씩 정신을 놓기 시작하시더니만 최근에는 거동마저 불편해지셨다.

2~3년쯤 전, 크게 안좋으셔서 응급실 신세를 진 이후로는 모두들 어느정도 각오하고 있었고, 최근에도 몇달 걸러 계속 응급실 다녀오시기도 했다.

시골에는 계속 보살펴 줄만한 사람이 없어서 우리집에 모시려 해도 자꾸만 당신 집에 가야 한다시며 집을 나서서 엄마가 속상해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정신을 놓으신 와중에도, 당신 집은 여기가 아니고 당신이 시집와서 지으셨던 집이라는 생각이신지 자꾸만 데려다 달라 하시더란다.

언제라도 가실 양반이라 생각하고 있었지만서도 막상 가셨다니 충격이긴 하다.
그래도 다행히 좋은 일(동생 결혼) 후에 가셔서 그나마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엄마도 할머니 상태 안 좋다해서 시골에 내려가셨다가 돌아가시는 걸 본 모양.
(자세한 이야기는 못 들었지만, 아침에 내려가셨다가 돌아가셨다 한 것 같고.. 이모삼촌들도 그때 오고 있는 도중이라 했으니.)

당신 집에서 돌아가셨으니 그래도 바라던 대로 된 것일까 싶기도 하다.
그 정갈하고 단정하신 분이, 남의 손에 목욕과 대소변처리를 맡기는 걸 정신이 돌아올 때마다 어찌나 괴로워하셨는지 생각하면 더 살아달라고 붙잡을 수도 없는 일이고.

아빠는 네가 할 일이 뭐가 있냐고, 엄마아빠가 알아서 할 테니 번거롭게 내려오지 말라 하셨지만
엄마를 생각하니 내려가야 할 것 같아서 금요일 휴가를 내고 아침차로 내려갈 예정.
동생도 신혼여행이라 우리나라에 없는데, 일을 하러 가는 게 아니라 엄마한테도 기댈 곳이 필요할 것 같다.
그래도 딸인데 엄마 혼자 외로이 둘 수는 없지.
(내려간대니까 그 와중에 회사 쉬어도 되냐고 엄마는 걱정하시더라. )

엄마는 처음 맞는 부모상이고, (외할아버지도 응급실 들락거리긴 하시지만 아직은...) 친가쪽 할머니 돌아가신지도 20여년이 되었으니 힘들고 당혹스러우시겠지...

지난 주 동생을 보내고 겨우 한숨 돌릴 찰나에 다시 안 좋은 일이 일어나서.
올 12월은 왜 이리 유난히도 일이 많은지 모르겠다.

Posted by smf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