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볼까말까 고민하다가, 1주년 기념으로 인터파크
예매자에게 CD를 준다길래 그럼, 한번 봐볼까~ 하는 기분으로 예매. 선착순으로 증정한다는데 바로 전날 예매해서 못받는거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 시디 뿐 아니라 일주년 기념데이라고 프로그램, 그리고 액정클리너가 달린 핸드폰고리까지 받았다. 정가가 아깝지
않군 ^^;
고리끼의 원작은 읽지 않아서 (그러고 보니 그 유명한 어머니도 안 읽었잖아? -_-) 낯선 분위기를
각오하고 갔다. (내가 러시아 문학을 읽은게 뭐 있지?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뿐인가. 닥터 지바고도 읽다가 집어치웠고-_-;
)
상상나눔씨어터는 지나가다가 입구는 자주 봤는데 실제로 안에 들어가 본 건 처음. 지하에 있는데, 로비가
없고 화장실 앞 복도에 의자가 몇 개 놓여있는 수준. 화장실이 세면대랑 같이 있는데다가, 남/녀 표시가 없어서 당황했다. --;
공연 10분전에서야 입장. 입장시각이 좀 느리네... 1열에 15석씩(5석마다 통로) 있는 작은 극장이었는데,
좁고 긴 느낌이 든다. 제일 앞 열과 무대와의 거리가 매우 가깝고 (고정무대가 아닌, 극을 위해서 설치한 무대인데, 맨 앞줄에
앉으면 무대가장자리에 무릎이 닿겠더라) 앞좌석과 높이차가 제법 나서 관람하기에는 편하다. 늦게 예매했다고 생각했는데 예매자가
거의 없었는지, 두번째 줄 통로석에 앉을 수 있었기 때문에 더욱 잘 볼 수 있었음. (좌석에 빈 자리는 거의 없었으니까 초대로
온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 바닥에 엎드린 씬만 제외하면 잘 볼 수 있었고... (그걸 잘 못 본 건 내 앞자리 아가씨가
참-_- 정신사납게 몸을 움직여서 시야를 가렸기 때문. 얌전히 좌석에 기대어 있을 것이지 -_-)
무대는 타냐의 술집.
관객석에 불이 아직 꺼지지 않았는데 갑자기 배우들이 등장해서 화들짝 놀랐는데, 관람매너를 설명해 주기 위해 등장하셨더군. ^^
핸드폰 끄고, 열정적인 반응을 부탁드린다는 요지의 말을, 사친과 죠프 두 배우가 극중 시대에서 튀어나온 듯한 분위기로 만담하듯이
진행해서 즐거운 시작.
극이 시작되었는데, 워낙 작은 공간이다 보니 둘째줄에 앉은 내게도 무대 조명이 너무 잘
비쳐서, 무릎에 놓아두었던 프로그램을 다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글자가 보이니 자꾸 펼쳐서 읽고 싶은 충동이 -_-;; 이
경우는 너무 앞자리였고, 밝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무대 집중이 힘들었던 드문 예. 이런 적은 없었는데 말야.
타냐의 술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 무대의 단점이라면, 러시아라는 걸 느낄 수 있는 분위기가 부족하다는 것. 황량한
겨울이미지가 별로 들지 않는달까? 타냐 역 맡으신 분이 억척스러움은 강조가 되었지만 카리스마가 부족했던 게 제일 아쉽네. 술집의
음악가가 베이스 등 현악기를 연주하고, 타냐가 연주하는 피아노가 있어서 MR과 라이브를 적당히 섞어서 진행된다. (악단 소개가
없어서 MR이라고 생각했는데, 안 보이는 무대 뒤 어딘가에서 연주하고 계셨다면 낭패-_-; )
제목처럼 밑바닥 인생들이다. 타냐와 안나도. 나타샤와 페페로도, 배우와 사친과 죠프도, 바실리사와 백작도 잠깐 희망 비슷한 걸 바라보지만 금방 꺼지고, 남은 현실은 암담한 밑바닥뿐.
보러가기전에 대충 훑어본 리뷰 중에서, "음악이 극에 흡수되지 못하고, 음악이 나오는 동안 잠시 멈춘 듯한" 과, "그래도
이제는 희망이 보이는"이 인상에 남아있었는데 대체 희망이 어디 있다는 건지는 모르겠더라. 잠깐 빛이 비추려고 하다가도 금방
빼앗긴다. 남은 현실은 계속 암담한 밑바닥. 음악이 나오는 템포가, 내가 익숙하게 보던 뮤지컬보다는 한박자 늦은 기분이 들더라.
여기서 노래가 시작되겠지, 싶은 부분에서 대사를 주거나, 한 호흡 쉰 이후로 노래를 부르는 경우가 많아서 약간 어색함을 느끼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가라앉은 분위기를 내기에는 더 좋았을지도.
안나의 독창(내일은 어떨까?)에서의 연출은 정말
깜짝. 설마 그렇게 가면을 이용할 줄은 몰랐다. 잘자라 안나에서는 눈이 시큰해졌는데... 나중에 사인회때도, 타냐 역 맡으신
신금숙씨가 "잘 보셨어요?" 라고 물어서 "눈물날라 그랬어요" 라고 그랬더니 "눈물 나려고만 하고 눈물은 안나나봐~ 어쩌니~"
이러시던데... 그 이유가, 배우의 연기에 감동받아서 눈이 시큰해진 게 아니라 그 상황에 몰입했기 때문이라고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_-; 눈물을 짜내는 상황이어서 스토리에 집중하다 보면 시큰하게는 되는데... 실제로 눈물을 흘릴 정도로 연기에
감동받지는 못해서 말이지. -_-;
공연이 끝나고, 사인회가 있다는데 저렇게 좁은 복도에서 하려나? 하고 걱정했는데 의외로 무대에서 진행. 와~ 나 무대에서, 그것도 열명가량 되는 전 배우가 복닥복닥하게 앉아서 진행하는 사인회는 처음이야~ =.=
감독도, 배우들도 모두 "잘 보셨어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등등 인사를 하면서 사인해주는데 참 보기 좋더라.
사실 이날, 날 괴롭혔던 건 작품도, 배우들도 아니고 관객들이었는데...-_-;
이렇게 당혹스러운 관객은 "날보러와요" 이후 최고! -_-;
날보러와요에서 앞좌석 팔걸이에 발을 턱 올려서 나를 화들짝! 놀라게 한 분의 포스에는 아직 못 이르렀지만 --; 이번에도 역시 내 옆자리 여자분의 포스가...-_-;
70년대 영화에서 막 빠져나온듯한 하늘색 셔츠원피스와, 그네공주님스러운 헤어스타일부터 나를 놀래키더니, 극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내내 혼자서 PDA폰으로 셀카를 찍고 놀더라. 찰칵, 찰칵 소리가 거슬리기는 했으니 시작 전인데 뭐...하고 참았건만...
무릎위에 커다란 보스턴 가방을 올려놓고는 (가출했냐-_-; ) 공연 내내 부스럭부스럭 가방안을 뒤진다. (뭐 그리 소중한게
들어있길래-_-) 전화기를 끄지도 않더만 급기야 중간에 웅~~하고 진동도 울리고. 진동이 울리는데 수습도 하지 않고 내버려 두나
했더니... 멈춘 후 꺼내서 확인하더라. -_-; 저기 아줌마, 두번째 줄이거든요? 무대에서도 다 보여요-_-; 혼자서 오신 것
같은데 뭐 그리 경우가 없냐. 급기야 참지 못하고 "저기, 관람에 방해가 되거든요?" 라고 암전때 소근거려줬더니 뭐 이런게 다
있나 하는 눈빛으로 쳐다봐주시더라. 무시하긴 했지만. -_-; 가방을 뒤적이며 부스럭거리는 건 멈췄는데 이제 온몸을 뒤척이기
시작한다. 작은 극장이고, 의자가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옆에서 그렇게 뒤척이면 옆좌석도 흔들리거든? -_- 아...정말 괴롭더라.
누구 아는 사람 있어서 보러 온 모양인데, 그럼 관람경험이 좀 있는거 아닌가? 뭐 이딴 인간이 다있어... 공연시간이 조금만 더
길었다면 폭발했을지도. -_-;
그리고 다른 관객들도... 1주년 기념이라 많이 본 관객들이나, 지인들이 많이
올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는지, 전체적으로 어수선한 분위기. 장면이 이해안되서 물을 거면 소근거리란 말이닷. 통로 건너편의
나한테까지 들릴만한 크기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돼! -_-
끝날때쯤 되니까 암전때마다 끝인줄 알고 박수쳐대더라. 내가 익숙하지 않은건가? 그치만 왜 거기서 박수치는지 알 수 없단 말이닷. -_-;
초반엔 노래 한곡 끝날때마다 박수를 쳐대서 바로 이어지는 대사가 묻히기도 하더라. -_-;;;
공연은 그럭저럭 좋았고, 사인회때 배우들 태도는 매우 좋았고, 관객들은 짜증났던 공연.